『천 개의 파랑』 저자-천선란의 소설은 , 서로 다른 존재들이 빚어낸 회복과 연대의 이야기
여름밤, 바람이 창가를 스치는 조용한 순간. 가끔은 말없이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책 한 권이 내 안의 슬픔을 조용히 덜어주고, 오래도록 곁에 머물러주는 그런 시간. 천선란 작가의 장편소설 『천 개의 파랑』은 그런 이야기를 건네는 책이다.
이 소설은 ' 인간, 동물, 로봇'이라는 서로 다른 존재들이 우연히 만나 상처를 보듬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는 서사다. 기술의 차가움이 아닌, 감정의 따뜻함을 중심에 둔 이 이야기는 마치 조용한 파도처럼 마음을 두드린다.
기계가 인간보다 더 따뜻할 수 있을까?
『천 개의 파랑』은 인공지능 로봇 ‘파랑’을 중심에 둔다. 하지만 이 AI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메마른 기계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보다 더 다정하고 조심스럽게 감정을 다룰 줄 아는 존재다. 파랑은 사람들의 감정을 이해하려 하고, 함께 아파하며, 기꺼이 곁에 머무른다.
천선란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기술과 인간성의 경계를 허물며 묻는다. 감정은 정말 인간만의 것일까? 우리는 파랑의 행동을 통해 어쩌면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존재를 만나게 된다.
상실을 품은 존재들이 마주한 회복의 가능성
경주견 조, 말을 잃은 소녀 지유, 그리고 경마장에서 일하던 진우. 이들은 모두 각자의 이유로 삶의 중심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사랑하는 존재를 떠나보내거나, 말문을 닫거나, 앞날을 잃어버린 채 머물러 있는 인물들. 하지만 이들이 ‘파랑’을 만나면서 조금씩 변화가 일기 시작한다.
이 소설은 화려하거나 극적인 사건 없이도 마음을 움직인다. 일상의 조각 속에서 피어나는 다정함, 함께 걷는 시간의 무게, 그리고 조용히 건네는 이해의 손길. 그러한 장면들이 감정을 묵직하게 울린다.
특히 동물과 인간, 로봇 사이에 생겨나는 미묘한 감정선은 독자 스스로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반려동물을 사랑해 본 사람이라면, 그 관계에서 겪는 애틋함과 이별의 슬픔이 고스란히 느껴질 것이다.
✍️ 감정을 문장에 담아내는 작가, 천선란
천선란 작가의 글은 과학을 배경으로 하지만, 결국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의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 『나인』 등에서 보여줬듯이, 그녀는 기술보다는 감정을 더 섬세하게 포착하는 작가다.
『천 개의 파랑』에서는 특히 강점이 도드라진다. 소박하고 단정한 문장, 과하지 않은 감정 묘사, 그리고 공감이 스며 있는 잔잔한 울림을 준다.
“그날의 파랑은, 수면 위를 스쳐간 감정의 결처럼 사라졌지만, 분명 존재했다.”
이런 문장을 읽을 때면, 책을 덮지 못하고 한참을 바라보게 된다. 말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들이 가만히 가슴에 내려앉는 느낌이다.
🏆 수상작 그 이상의 의미
『 천 개의 파랑』은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부문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다. 수상 이력 이상의 울림이 있는 이 책은, 영화감독, 배우등이 추천한 도서로도 잘 알려져 있다.
출간 이후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오며, SNS와 북클럽에서도 입소문이 퍼지고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며 “눈물이 났다”, “마음이 다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는 감상평을 남기곤 한다. 그것은 이 소설이 단순한 감동을 넘어, 삶에 대한 조용한 이해를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무리하며 – 조용히 머무는 문장의 온기
우리는 누구나 상처를 안고 산다. 말하지 못한 감정, 꾹 눌러 담아둔 기억, 쉽게 닿지 않는 마음. 『천 개의 파랑』은 그런 이들에게 다가가 말없이 곁에 앉아준다.
이 책은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떤 파랑을 지나고 있나요?”
그리고 이렇게 속삭인다.
“괜찮아요. 파도는 언젠가 잦아들고, 당신의 마음엔 다시 빛이 찾아올 거예요.”
삶이 고단하고 감정이 무뎌질 때, 우리는 잠시 멈추어 설 수 있는 이야기를 찾는다. 이 책은 그럴 때 조용히 손을 내밀며 말해준다.
한 번쯤 울어도 괜찮고, 멈춰 서도 괜찮다고.
『천 개의 파랑』은 그런 다정한 문장을 가진 책이다.
당신의 하루가 조금 따뜻해졌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제 역할을 다한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당신도 누군가의 ‘파랑’이 되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